언 제 : 2005년 10월 29일 토요일
어디로 : 백두대간[신풍령(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누구랑 : 대전토요산악회 43명
날 씨 : 맑음,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음
09:06 신풍령 휴게소에서 단체사진 찍은 후 도로를 건너 웅벽위로 산행들머리가 나있다.
시작부터 된비알이다.
이제 산하는 가을의 끝인지 낙엽도 거의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엔 빛바랜 낙엽들이 을씬년
스럽게 메달려있다.
등로엔 떨어진 낙엽이 지천이다. 이구간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소사고개 다와서 펼처지는 대규모의 배추밭들은 엄청나다.
소사고개 도로에 나와서 왼쪽으로 조금가면 소사리가 있고 마을 초입에 조그만 가게가있다.
그곳에서 식사들을 한다.
가게에서 라면도 조리해서 주고 주류도 판다.
라면때문에 식사들을 맞있게 한다.
식후 삼도봉으로 대덕산으로 덕산재로......
덕산재에서 족발과 오뎅으로 진땡이와 쇠주로 입가심 후
설천 삼도봉장터 장터국밥집으로 이동......
빼재(940)에 대한 첫 번째 얘기
덕유산을 남에서 북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넘다보면 국립공원 경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른다. 이곳이 보통 “빼재”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름이 독특하여 연유를 찾아본 즉, 이곳
이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여서 수많은 전사자가 생겨나 뼈를 묻어서 그런 이름이 생겼
다는 설과 임진왜란 전쟁통에 식량이 부족하여 주민과 군사들이 산속에서 닥치는 대로 잡아
먹은 날짐승들의 뼈가 널려 있었다는 설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그 이후 “뼈
재”라는 명칭에 경상도 사투리가 가미되어 빼재라는 이름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빼재에서
거창쪽 방향으로 조금 아래에는 신풍령휴게소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아니면 빼재를 다른 명
칭으로는 신풍령이라 했는지 빼재는 신풍령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빼재 한쪽 편에 붉고 큰 글씨로 “秀嶺”이라고 써 놓은 비가 놓여있다. 사실 이곳에
처음 왔을때에는 “수령”이라는 용어에 의아해 했었다. 이곳 지명은 빼재 혹은 신풍령이라
고 부르는 것을 알고있는데 웬 “수령”. 그것도 붉은 글씨로. 그러나 역시 의문은 금방 풀
렸다. 빼재라고 하니까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즉, 빼어날 수(秀), 재 령(嶺)! 그래서 수
령이다.
수령비(?)를 세웠다면 제법 돈이 많이 들어갔을 터인데,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자신있게
수령이라고 쓸 정도이면 지역 명칭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있었을 터인데 많이는 아니지만 몇
자료를 찾아봐도 이곳이 수령으로 불릴 만한 역사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누구의
얘기처럼 “빼재”라는 우리말을 다소 천하게 보고 한자로 옮긴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나 문헌을 봐도 “수령”이라는 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 그저 백두대간 관련 서적에는 빼재에 “수령”이라고 쓰인 비가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필
자의 직관이겠지만 이 재의 명칭은 앞으로도 “빼재”로 계속 불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
상 많은 위대한 개인이 있었지만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민초들이다. 훗날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이곳이 수령대신 빼재로 남는다면 이것은 민초들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런 수령
비보다는 지역의 명칭에 대한 유래 등의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이 빼재로 남을 강력한 확증을 갖는 사건이 있었다. 빼재에는 고단하게 고개를 올라 온
차들이 쉴 수 있도록 약간의 주차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차를 멈추고 풍광을 보
고 수령비를 보고 간다. 수령비를 보고 옆에서 한담하던 내 귀에 다른 일행의 대화가 들려왔
다.
빼재에 대한 두 번째 얘기
많은 사람들이 빼재에서는 놀라는 것은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게 깎아 세운 절벽이다.
노출된 암반은 참혹스러울 정도이고 깎아낸 암반의 규모도 실로 엄청나다. 굳이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싶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곳이 과연 민족의 명맥을 잇는 백두대간이란 말인가?
그러나 실제로 백두대간상에는 이렇게 마루금을 절개한 모습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전에
허영만 화백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물줄기도 대간을 자르지 못했는데, 불도저는 대간을 끊어버렸다!”
아! 빼재!
빼재에 서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덕유산 송계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대간 능선을 반나절 동안 오르내리며 도착한 '빼재'에는,
'수령'(秀嶺)이라 새긴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신풍령(新風嶺), 뼈재, 상오정고개 등
등 이름이 다섯개나 되는 빼재는 거창~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지나가며 도로 양쪽으로는
산세가 매우 가파르고 골이 깊다.
때문에 옛부터 짐승도 많고 사냥꾼과 산적들이 활개를 쳤다고 하는데, 고갯마루에 마을은 없
고 거창 방향인 남쪽으로 커다란 신풍령 휴게소가 있다. 이곳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사먹고
기운을 차려 험한 삼봉산(덕유삼봉 1,254m)을 넘어가는 것이다.
삼봉산은 앞에서 보면 여인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게 보이나 실은 험난한 바위봉으로 판이한
두 얼굴을 지닌 산이며, 특히 소사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마치 벼랑에서 떨어지듯 경사가 급
하다. 고냉지 배추밭이 조성된 이곳은 상당히 넓은 안부를 이루고 있으며, 맞은편 대덕산
(1,290m)의 웅장하면서도 드넓은 풍광이 한눈에 보이니 가슴이 다 후련하다.
고갯마루에서 약간 왼쪽으로 새와 무궁화가 새겨진 소사마을 표지석이 서있고, 길가에 식수
를 구할 수 있는 작은 가게와 새소리가 정겨운 산골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소사라는 마을 이
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기' 때문에 생겼다고 하며 필자는 마을의 모래
바닥에서 야영을 하였으나, 길 따라 50m 정도 내려가면 폐교된 소사분교 운동장이 야영 장소
로 아주 좋다.
이 지역 일대는 정확한 대간 길의 독도가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백두대간 대부분의 고개
가 도(道)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소사고개(680m)는 경상남도 거창 땅이며 고갯마루에서 전
라북도 무풍 방향으로 10여분 걸어내려간 '도계'(道界) 마을이 경계지점이다. 따라서 고개
이름을 전라도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계에서 '항상 농사가 잘 된다'는 무풍(茂豊)까지는 약 9km로 지난번 태풍 루사로 인한 막
심한 피해 현장이 도로 곳곳에 나있으며, 무풍 삼거리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평생 처음 겪어
본 큰 물난리 이야기에 아직도 진저리를 친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담소를 즐기는 촌로들
에 의하면, 무풍은 전라도 무주와 충청도 영동 그리고 경상도 거창으로 갈라지는 곳이라며
그래서 '무풍 지경(地境)이'
라고 부른다고 한다.
대덕산에서 내려온 물이 충청도 금산의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무풍에서 가까운 설천에는, 무
주구천동 33경의 제1경 이라는 백제, 신라가 통하는 길목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이 뚫려있
으며 그곳을 매일같이 밥먹듯 지나가는 버스 운전기사가 던지는 말이 걸작이다. "그거 별 것
아니라요."
덕유산 구천동과 천연기념물 '반딧불이'가 상징인 무주에 가면 시내버스에 써있는 '살기좋은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이라는 표어가 눈에 뛴다.
한편 소사고개에서 오른쪽 방향인 거창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현재 주민수가
적어(약 4만명) 아직도 읍에 불과하다. 거창군 전체 인구도 해마다 줄어 지금은 10만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 거창(居昌)의 지명 변화를 보면 흥미로운데, 부족국가 시대의 '고순시국'(古
淳是國) 또는 '자타'(子他)에서 신라 시대에 거타(居陀), 거열(居列)로 불리다가 거창(居昌)
으로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제창(濟昌)으로 불렸다.
계속해서 대간 종주는 소사고개에서 산세가 부드러워 보이는 대덕산으로 올라서는데, 산길은
잡목 숲과 묘지를 지나 생각보다 힘든 오르막 산행으로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 '거창 삼도
봉'이라 부르는 봉우리와 사방으로 전망이 뛰어난 대덕산을 지나 덕산재에 도착하면 썰렁한
분위기의 휴게소가 하나 서있다.
덕유삼봉산에서~ (진달래님이 보라했던것이 아닌지?)
진달래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眞이
이제 너만 그리워하기로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죽어서도 못 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온 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덕산재~
정감록을 보면 삼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 가운데 하나로 무풍을 꼽고 있다. 그처럼 길지로
꼽히는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와 김천시대덕면 덕산리의 도 경계에 있는 고개가 덕산재다.고
개의 높이는 해발 644m. 구불구불 고갯길을 타고 고갯마루에 서면 남으로 가야산 줄기가 바
라보이고 북으로는 민주지산, 삼도봉의백두대간 산줄기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마주한다. 이어
서 고개를 넘어전라도 무주땅으로 들어서면 옛날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대치했다는
나제통문에 이른다
한국의 산천에서 펌
http://www.koreasan.com/san-search/san_view_form.php?
num=1480&p=1&mode=2&keytext=&flag_head=다
대덕산 삼도봉 초점산
전북 무주 경북 김천
-대덕산 - 삼도봉
삼도봉(三道峯). 이름 그대로 3개 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다. 그렇다면 남한에 삼도봉이란 이
름을 가진 봉우리는 몇 개나 될까. 정답은 3개다. 모두 백두대간 줄기다.
부산경남의 산꾼들에게 우선 떠오르는 봉우리는 지리산 삼도봉일 터. 지리산의 서부능선에
위치한 삼도봉(1550m)은 경남(하동)과 전남(구례) 전북(남원)의 경계지점에 우뚝 솟아 있다.
반야봉(1732m) 바로 아래 위치한 삼도봉의 원래 이름은 낫의 날을 닮아 낫날봉. 발음이 쉽지
않아 '날라리봉' '늴리리봉'으로 불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해 삼도봉으로 새 이름을 부
여받았다.
충북(영동) 경북(김천) 전북(무주)의 경계점에 위치한 삼도봉(1177m)도 있다. 경계를 가르는
도(道)가 완전히 달라 봉우리 앞에 '오리지널' 혹은 '혼또'라는 수식어가 흔히 붙는다. 정상
엔 3개 도 주민들이 세운 대화합기념탑이 있다. 국립공원 소백산과 속리산을 거쳐 추풍령에
서 잠시 숨을 고른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다가 3개 도의 경계지점에
이르러 우뚝 솟구쳐 오른 봉우리다.
또 다른 삼도봉(1249m)은 경북(김천) 전북(무주) 경남(거창)을 구분짓는 봉우리. 대화합기념
탑이 위치한 삼도봉의 남쪽에 바로 이웃한 대덕산을 지나면 곧바로 만난다.
삼도봉 아랫마을인 김천시 대덕면 덕산마을 촌로에게 대덕산과 이웃한 삼도봉을 아느냐고 물
어보니 대덕산에 속하는 하나의 봉우리라고 말할 뿐 금시초문이라고 말한다.
정리해보면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남으로 흘러 흘러 대화합기념탑이 있는 '오리지널' 삼도봉
에서 대덕산 - 삼도봉을 거쳐 덕유산 백운산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초점산이라고도 불리는 삼도봉에서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헌걸찬 능선길을 내달렸다
. 1000m가 넘는 고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시원하고 사각사각 즈려 밟
히는 낙엽은 초겨울 산행의 진면모를 체험케 해준다.
들머리 덕산마을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경계인 덕산재에서 김천쪽으
로 가장 가까운 마을. 덕산재에서 차로 2분 정도 걸리고 1㎞ 거리.
마을 앞 길가에 '미끄럼주의 빙판길 전방 300m'라고 적힌 조그만 팻말이 세워져 있다. 길 건
너 밭 사이 시멘트길로 간다. 정면에 두 개의 큰 봉우리가 보인다. 왼쪽이 삼도봉, 오른쪽이
대덕산. 곧 사거리. 직진한다. 우측길은 대덕산을 거쳐 하산할 길.
노랗게 색이 바랜 낙엽송 군락지를 따라 걷는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낙엽송은 힘이 넘친다.
푹신푹신한 길과 계곡의 물소리, 여기에 산죽과 억새가 곁들여져 적어도 이 순간만은 안성맞
춤 길이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묵은 길이 이어진다. 나무 넝쿨이 길을 막고 있는데다 돌마다 이끼가 덮
고 있다. 이렇게 35분 정도 오르면 계곡(큰골)과 만난다. 과거 폭우로 쓰러진 듯한 나무 밑
을 통과, 계곡을 건너 올라선다. 뱀 사냥용으로 추정되는 파란그물을 지나면 길은 더더욱 희
미해진다. 일단 능선쪽으로 치고 오르기 위해 길이 보일 듯한 10시 방향으로 무작정 오른다.
옛 길 흔적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지기가 수 차례. 과거 숯가마터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면 이
번엔 너덜길. 주변엔 길이 없어 선택의 여지없이 무작정 오른다. 여기서 능선까지 40여분 동
안은 정답이 없다. 마침내 능선. 능선에 올라도 아직 뾰족한 길이 없다. 우측 나무숲을 헤치
고 전진한다. 그야말로 악전고투. 10분 뒤 작은 암봉을 지나 2분 정도 다시 고생하면 상당히
묵은 좁은 오솔길을 만난다. 15분 뒤 포갠바위를 지나면서 비로소 길다운 길을 만난다. 이제
고생 끝. 다시 한 굽이를 넘으면 눈앞에 억새군락지가 펼쳐진다. 끝물이지만 가을 정취를 느
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삼도봉까지는 10분 거리.
조그만 정상석엔 삼도봉, 그 옆 작은 글씨로 초점산이라 적혀있다. 정상석을 기준으로 서쪽
무주땅, 남쪽 거창땅, 동쪽은 김천땅이다. 서쪽으로 덕유산 삼봉산 향적봉 중봉 백암봉 월봉
산 금원산 기백산이, 남쪽 거창쪽으론 뾰족봉인 금귀봉 보해산 흰대미산 양각산 수도산 월매
산 단지봉 가야산 독용산 등이 산의 물결을 이룬다.
또 다른 봉우리인 대덕산은 코 앞에 있다. 김천시 대덕면에 위치한 대덕산(大德山)은예부터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은혜를 입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삼도봉에선 백두대간 능선길이라 35분 정도 그냥 내달리면 된다. 산길도 선명한데다 능선길
주변이 온통 끝물 억새군락지다. 신불평원이나 화엄벌이 전혀 부럽지 않다.
정상은 헬기장. 북으로 민주지산 석기봉과 백두대간 산줄기인 삼도봉 막기항산이 잇따라 펼
쳐진다.
하산은 정상석 뒤로 내려선다. 제법 급경사 길이지만 낙엽과 산죽길이 아주 인상적이다. 25
분 정도 뒤 얼음골 약수터. 잠시 목을 축이자. 이후부터 완연한 낙엽길. 지그재그 산길인데
다 발목까지 덮여 여간 즐겁지 않다. 약수터에서 25분쯤 뒤 덕산재 갈림길. 좌측은 덕산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어서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간다. 대간길을 버리니 갑자기 길이
사라진다. 할 수 없이 계곡으로 내려서니 우측에 산길이 보인다. 10분 뒤 산행 초입 만나는
첫 사거리에 닿고, 다시 10분 뒤 덕산마을에 도착한다.
덕산재 정상에는 폐업을 한 주유소가 지금은 '대덕산 산삼 감정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
고 길 건너편에는 대형 대덕산 등산로 안내판과 그 뒤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빼재 들머리~